
뭐할까 생각중임
by 여은아빠
|
2008년 02월 10일
필리핀에서는 2001년 이후 14명의 판사와 26명의 변호사가 살해당했다. 2008년 1월에도 마닐라 남쪽 칼바요그(Calbayog) 시법원의 판사 Roberto Navidad가 칼바요그 시내에서 왼쪽눈에 총을 맞아 살해당했다. 현재까지 자동차에 올라탄 판사에게 다가가 총을 쏜 다음 유유히 걸어서 사라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경찰서장은 도시 전체의 치안은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고 중얼대고 있다. 한 사건에 관여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모두 살해되거나 살해위협을 받은 사건도 있다. 2005년 담당 사건의 판사가 살해당했고, 그 다음해에 같은 사건의 기소유지 변호사(검사)가 그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으며, 2007. 5.경 피고인의 변호사인 Jose Bernas도 총격을 받았다. 변호사는 구사일생된 후 필리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위와 같은 판사, 변호사 살해가 아로요 대통령의 취임 이후 급증했다는 점이다. 판사, 변호사는 물론 기자, 사회사업가 등 약 900명이 아로요 집권시에 살해당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또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판사, 변호사가 살해되거나 살해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법질서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아로요 정부나 필리핀 대법원도 특별경찰팀을 만들고 경호를 강화하는 등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100불이면 청부살인자를 고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 뾰족한 방어방법이 없다고 한다. 2008. 1.에도 마닐라 법원에 괴한이 침입하여 법정에 출석하던 사람을 쏴죽였다고 한다. 이제 범죄피해자나 증인은 물론 피고 등도 법원에 나가길 꺼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까지 판사나 변호사를 죽인 죄로 유죄를 인정받은 예가 없다는 것이다. 판사 또는 변호사로서는 도저히 공정한 재판이라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국민들도 이와 같이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 재판하는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이 생각해도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법조인들의 고통에 깊은 연대와 공감을 보내며, 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버린 필리핀 법원을 걱정해 본다.
[이글은 IHT2008. 2. 5. 자 Carlos H. Conde작성 기사를 주로 하여, 인터넷 검색 사항을 추가하여 작성된 글임. 김동진 2008.2.10.작성, egloos에도 같은 포스팅]
# by 여은아빠 | 2008/02/10 16:07 | 세계를 간다 | 트랙백 | 덧글(1)
2008년 02월 10일
1. 민노당 탈당을 응원하며 드디어 좌파들이 정신을 차리고 주사파를 고립시키기로 했다. 만사지탄이며 기쁜 일이다. 이제 남은 일은 민주노동당에 남은 놈들은 모두 주사파로 간주하고(스스로는 주사파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그렇게 봐주는 수 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매장해버리는 일이리라. 하지만 주사파의 생존력도 바퀴벌레이상인지라.. 기우이지만, 앞으로 세우는 새로운 좌파정당에는 주사파가 끼지 못하도록 단단히 방어막을 쳐야 할게야. 요즘은 돌아다니며 주사파들의 발광을 보는 것이 한 재미한다. 프레시안에 실린 진중권의 글도 재미있고.. 그 중 압권인 댓글... "만약 주사 파쇼 왕당파들을 안고 가는 것이 진보이며 좌파적 가치라면, 전 차라리 보수 우익의 편에 서서 주사파를 품은 진보를 타도하자는 조갑제 옹의 멸공 성전에 동참하겠습니다." That's great!!
# by 여은아빠 | 2008/02/10 14:06 | 트랙백 | 덧글(0)
2006년 04월 29일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일단 주간조선에 나온 제성호 교수의 글을 정리한다. 일본은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1905년 1월 18일자 내각의 각의(閣議) 결정과 그에 기초한 같은해 2월 22일자 ‘시마네(島根)현’ 고시 제40호를 들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국내적 행정조치를 통해 무인도이며 어느 나라도 점령한 적이 없는 ‘리양고’(Liancourt Rocks, ‘리앙쿠르’란 말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이 항해 중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하고 Riancourt라고 명명한 데서 기원한다. 리양고는 리앙쿠르의 일본명이며 곧 독도를 가리킨다)를 그들 영토로 편입하고 다케시마로 명명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 먼저 무주물의 선점 주장에 대한 것이다. 첫째, 한국은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독도(당시 명칭은 우산도)를 발견하고 우리 영토로 복속시키는 한편, 이곳을 어업거점으로 이용해왔다.(삼국사기 신라본기 권4) 반면 일본은 16세기 말 비로소 동해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000년이나 늦게 독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 문헌에서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1667년에 편찬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라는 책부터다. 둘째, 고종 황제는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에 의해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울릉군(독립 군으로 승격)의 한 부속도서로서 행정적 관할을 변경한 바 있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인이 불법적으로 울릉도에 건너와 나무를 도벌하자, 강력한 단속을 위해 이처럼 행정구역을 개편했던 것이다. 즉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를 발표하기 이미 5년 전 우리는 합법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증거에 대해 일본은 억지논리를 세워 우리 측 입장에 반박하고 있다. 우선 신라 지증왕 때 한국이 독도를 먼저 ‘발견’했는지는 모르나 조선은 태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1417~1881년) 460여년간 공도정책(空島政策)을 폈다. 일본은 이를 두고 국제법상 ‘영토의 포기’에 해당한다고 강변한다. 여기서 공도정책이라 함은 조선이 군역이나 납세를 피하기 위해 바다 건너 울릉도와 그 속도(屬島)인 독도에 들어가 사는 것을 금지하는 것, 곧 평상시 섬을 비우는 정책을 말한다. 이 같은 영토 방기의 결과 일본이 16~17세기에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독도를 그 시기 동안 방기한 게 아니고 승정원일기, 숙종실록, 정조실록 등에서 나오는 것처럼 조선은 평균 3년에 1회 정도 수토관(搜討官·순찰관)을 보내어 울릉도와 독도를 순시하는 등 관할권을 행사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음 일본은 “고종 황제의 칙령에는 울릉도, 죽도 외에 석도(石島)라는 말이 나올 뿐 독도라는 말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동해에 석도라는 명칭의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석도는 의미상 돌섬으로 ‘돌섬→ 독섬→ 독도’로 변했다는 것이 우리 측 주장이다. 이러한 논쟁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 공문서상 독도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게 시마네현 고시가 발령된 지 1년쯤 후인 1906년부터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선점) 조치가 국제법상 무효라고 본다. 그러한 이유로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었다는 사실 외에, 영토편입과 같은 조치는 마땅히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해당 국가에도 통보하는 것이 통례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시마네현 고시는 지방정부 차원의 ‘서류 점령’(paper occupation) 조치였고, 또 관련국인 조선에 통보한 바 없는 ‘은밀한 점령’ 조치에 불과했다. 이처럼 일본이 선점에 근거한 영토편입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자, 나중에는 이른바 ‘고유영토설’(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일본의 고유한 영토라는 주장)에 근거해 본래부터 독도는 자기 땅이었는데, 이를 확인하고 분명히 하기 위해 영토편입을 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꾼다. 아무튼 일본이 독도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시마네현 고시를 근거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일본이 의지하는 또 다른 근거로는 1951년 9월 서명되고 1952년 4월 발효한 샌프란시스코 대일평화조약을 들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는 패전국 일본의 영토에 관한 조항인데 여기서는 일본이 침략정책으로 강탈했던 옛 영토의 배제(원 소속국으로의 반환 내지 원상회복)를 명시하고 있다. 이 조문에서 독도를 명시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만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에서 독도를 명기하여 일본 영토에서 이를 배제하고 한국에 반환한다는 것을 공식화했다면 오늘날 독도문제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한국이 전승국의 자격에서 대일평화조약 협상에 참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아쉬운 결과였다고 하겠다.
# by 여은아빠 | 2006/04/29 23:32 | 세계를 간다 | 트랙백 | 덧글(0)
2006년 02월 19일
가정에서 키우기 적당한 꽃] ■ 꽃배치시 유의점 원예식물의 배치에는 공간의 크기 및 기능.환경.관상위치.시물형태나 크기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실내에 있어서 응접실이나 아이들의 방.침실 등은 우리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그 대상자에 따라 각각의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화나 관엽식물을 장식하는 경우는 그 방의 넓이나 장식하는 위치와 함께 기능을 고려해 각각의 방에 어울리는 식물을 선택해 장식한다. 실내에서 식물을 최고 효과적으로 장식하기 위해서는 탁상.바닥.벽면 등 공간의 이용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연구가 필요하다. 더욱이 현관에서는 겨울동안 바깥 온도의 영향을 받기 쉽고 온도가 낮기 때문에 각각의 환경에 적합한 식물을 선택해 장식하도록 한다. 또한 화분을 놓는 위치나 각도 그리고 장식방법 등을 고려해야 하고 거실.응접실.식당.부엌 등에서는 위생문제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식물은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성질과 개성적인 특징이 있다. 고온을 좋아하는 것, 저온에서도 잘 생육하는 것, 다습을 좋아하는 것, 햇볕을 좋아하는 것,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것 등 다양하다. 때문에 디스플레이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식물의 성질이나 특징을 알고 장식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최대한의 연출 교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생활 속 꽃배치의 예 * 정원 정원은 자연환경으로서 햇볕이 잘들며 물주기에 의한 오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화훼류와 채소를 함께 가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는 감각적으로 잘 부각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 예컨대 원형화단이 있다면 중심에는 초장이 큰 옥수수를 심고 그 주위를 빙 둘러싸듯 초장 30~40cm의 초화인 샐비어.페츄니아 등을 배식함과 동시에 고추를 심는다. 또한 부추 등을 심어도 아주 좋은 색채를 띤다. 주위에는 소형의 메리골드나 모란을 파슬리와 섞어 심어두면 아주 잘 어울린다. 화단 이외의 장소에서도 통로의 주위나 테라스의 모퉁이 등에는 파슬리가 잘 어울린다. 여름에 피는 하얀 꽃이 아름다운 부추도 심어서 그대로 두면 여러해살이풀로서 통로의 테두리와 어울린다. * 세면장 하루를 시작하는데 있어 한 떨기 연한 꽃은 집중력을 높여준다. 꽃은 소형의 관엽식물로 확실한 것을 선택한다. 또한 투명한 유리용기에 물 재배용의 소형 관엽식물을 장식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적당한 식물로는 몬스테라, 필레아, 싱고니움, 포토스, 양치류, 프리지어, 마거리트 등이 있다. * 부엌 주부가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여러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곳이 부엌이다. 작업대에서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럴 때 활력을 불러일으킬 화려한 꽃을 꽂아보자. 특히 장미, 튤립, 시크라멘, 해바라기 등은 창조력을 북돋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화장실 최근엔 화학적으로 합성된 화장실 방향제가 많이 쓰이나 생화에서 풍기는 향기와는 비길 바가 못된다. 향기가 좋은 수선화가 가장 알맞다. 화장실은 가장 긴장을 풀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뜰 같은데 피어 있는 꽃 한송이를 꽂아도 좋을 것이다. 보온효과가 있으므로 고온 다습성의 관엽식물을 장식하는게 좋고, 벽면의 백색이나 주위의 담색은 녹색식물을 더욱 뛰어나게 한다. * 어린이방 최근의 어린이들은 자연과 접하는 기회가 적고 식물에 대한 게절감도 없어지고 있다. 꽃을 느끼는 마음은 자연을 느끼는 마음과 통하리라고 본다. 화려하고 호화롭지 않아도 되며 스위트피나 코스모스 등의 가련한 꽃을 책상 위에 몇송이 꽂아 놓으면 좋다. 적당한 식물로는 고무나무, 드라세라류, 필레아, 파인애플류 등의 관엽식물과 베고니아, 구근류로서 히아신스, 수선화 등의 분화가 있다. * 침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의 활력을 위해서는 푹 쉬어야 한다. 음양의 관계에서 보아 음에 속한 연한 빛깔채가 있는 꽃은 피한다. 안개꽃 같은 것이 제격이다. 또한 침실은 그 성질과 기능으로 보아 위로부터 덩굴지고 선반 위에 놓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또 햇볕이 잘 안드는 곳이기 때문에 움지에 강하고 게다가 내한성이 있는 식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한 식물로는 드라세라류, 야자류, 테이블야자 등이 있다. * 현관 문을 열고 현관에 한발 들여 놓았을 때 그곳에 장식된 꽃으로 그 집이 어떤 가정인가를 알 수 있다. 수반에 꽂혀진 꽃도 좋지만 아무렇게나 놓여진 아련하고 귀여운 꽃도 따스하게 사람을 맞아주는 것 같아 보기에 흐뭇하다. 또한 화분에 심어진 베고니아 등도 가족이 드나들고, 길가는 사람의 눈에 잘 띄는 현관앞에 놔두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현관은 공간이 좁은 곳이므로 그 기능을 생각해서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산뜻하게 신발장 위나 벽면을 이용해 매달기 화분으로 장식하면 좋다. 일반적으로 현관은 햇볕이 잘 안들며 바깥기온에 영향을 받기 쉽고, 특히 겨울동안은 실혼이 내려가기 쉬우므로 현관에 장식하는 식물은 내한성이 강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적당한 화초로는 드라세라, 산세베리아 등의 관엽식물과 프리뮬러, 시클라멘 등이다. * 베란다 아파트의 베란다는 빨래 건조장소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정원의 대용으로 원예활동의 일반적인 장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장소를 이용한 분식이나 초화의 상자재배가 성행하고 있다. 화초류는 아이비나 스킨답서스 등을 벽걸이에 심어 벽에 걸어 이용하면 좋고 꽃베고니아, 아프리카봉선화, 프리뮬러, 팬지, 데이지 등을 분이나 상자를 이용하여 베란다나 창가에 놓고 기르면 좋다. 화분가꾸기에 적당한 채소로는 파슬리, 가지, 고추, 피망, 토란, 양배추, 케일 등도 있고 양동이 등의 용기가 있으면 화분보다 크므로 이곳에 흙을 넣는다면 토마토, 오이, 옥수수 등도 가꿀 수 있고그외에 호박, 박, 수세미 등의 덩굴성 식물도 기를 수 있다. * 옥상 옥상은 실내와 정원과는 달리 기후의 변화가 심해 표면의 온도변화가 심하고 매우 덥거나 춥고 바람도 강하다. 계절에 따라서는 햇볕이 강해 복사열에 의한 온도변화가 크고 수분이 부족하거나 대기오염이 심하다. 옥상의 이러한 특성은 원예활동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담벽이나 정원수에 의해 그늘이 지기 쉽고 비좁은 정원, 햇볕이 거의 들지 않고 청결해야하는 실내에 비해 햇볕이 잘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등 자연 조건에 가까운 특징도 있다. 때문에 흙만 도입된다면 어느 꽃이라도 재배가 가능하다. * 창가 창가는 원래 밝은 것이 요구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방이 어둡지 않도록 식물의 높이를 조절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초화 등 분화를 놓는 경우에는 깨끗한 플라워 박스나 플랜터를 이용해 디스플레이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세인트폴리아나 베고니아류의 분화를 여러개 늘어놓고 그 위로부터 내려뜨리는 화분에 변화를 주면 즐거운 창가림이 가능하다. 적당한 식물로는 드라세라류, 야자류, 테이블야자, 베고니아 등의 관엽식물이 있고 분화로는 세인트포리아, 베고니아류, 프리뮬러류, 콜레무스, 튤립, 시네나리아, 양란류, 팬지, 데이지 등이 있다. * 노인방 노인방은 햇볕이 잘 드는 위치에 있어 실내가 따뜻하기 때문에 관엽식물을 가꾸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햇볕이 잘드는 곳이나 선반 위 등이 장식하기에 적당한 위치이다. 너무 높은 곳이나 내려뜨리는 화분은 관리측면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고, 작은 크기의 것으로 관엽식물 종류가 적당하다. 적당한 식물로는 드라세라류, 야자류, 산세베리아 등이 있다. * 거실 공간의 여유가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대로 식물을 장식해보면 한층 흥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 텔레비전, 오디오, 책상 위에는 작은 관엽식물 화분이나 계절에 따른 분화를 놓는다. 공간이 넓은 장소는 실내의 모서리에 한두 개의 큰 화분을 놓아 악센트를 준다. 작은 화분이나 중간 크기의 화분을 넣은 플라워 박스 또는 덩굴성 식물의 경우 특별히 만든 칸막이를 만들어 구분짓는 것도 바람직하다. 햇볕이 잘드는 창가에서는 계절에 따른 초화난 꽃이 잘 피는 열대홤복도 즐길 수 있다. 적당한 식물로는 고무나무, 야자류,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등의 큰 식물, 디펜바키아, 드라세라, 크로톤류의 중간 크기의 것, 파인애플류, 안스리움, 마란타, 페페로미아류 이외에 덩굴성 식물 등의 작은 것들이 있다. 분화로는 베고니아, 양란류, 열대화목등이 있다. * 식당 식당의 코너에는 중간 정도 화분의 관엽식물을 놓고 선반 위에는 덩굴성 식물이나 소형의 관엽식물을 놓는다. 또한 위로부터 양치류로 크게 만들어 녹색의 샹들리에를 늘어뜨리면 더욱더 식당이 풍성하게 보인다. 주의해야 할 것은 식사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향기가 있는 꽃이나 화분이 떨어지기 쉬운 것은 피하도록 한다. 브랜디컵 등에 소형의 양치류나 베고니아류, 세인트폴리아 등을 꽂아서 식탁위에 장식하면 환경과 잘 조화된다. 적당한 시기물로는 드라세라류, 야자류, 양치류, 파인애플류, 덩굴성 식물, 크로톤 등의 관엽식물이 있고, 분화로는 세이니트폴리아, 베고니아, 프리뮬러류, 시클라멘 등이 있다. * 실내계단.복도 실내계단은 주택의 위아래를 연결시키는 기능이 있고, 복도는 방과 방을 연결시키는 것만이 아니고 각 방의 독립성을 나타내는 등 다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계단이나 복도는 비교적 사람의 이동이 잦은 곳이므로 그 기능을 생각해서 장식하는 화분이나 플라워 박스 등의 위치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복도의 경우는넓은 코너에 크면서 가늘고 입체적인 화분이 적합하다. 긴 복도의 경우는 벽면을 이용해 덩굴성의 식물을 장식하면 입체감과 악센트를 살릴 수 있다. 적당한 식물로는 고무나무, 아자나무류 등의 큰 관엽식물과 양치류, 필로덴드론류, 파인애플류의 작은 관엽식물과 계절에 따른 분화류가 좋다. * 응접실 식물을 놓는 장소는 방의 구석이라든지 소파의 옆 등 눈에 잘 띄는 곳이 좋다. 잎의 자태가 좋은 대형의 식물로 질감이 있는 것을 선택한다. 또한 벽면이나 천장으로부터 화려한 매달기 화분을 늘어뜨리는 것도 방에 입체감을 주기 때문에 좋다. 취향에 따른 장식법으로 유리제품의 테이블인 경우, 위에서 보아 아름다운 분화 등을 화분이나 바구니에 넣어서 테이블 밑에 장식하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 수 있고, 테이블 위에서도 넓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적당한 식물로는 몬스테라, 필로덴드론류, 야자류, 고무나무 같은 관엽식물이 있으며 양치류는 걸이용이 좋다. 분화로는 시클라멘 외에 계절에 따른 분화류를 이용한다. 자료제공:꽃사랑21가지의지혜(현 한국종자협회-고광용 전무이사)
# by 여은아빠 | 2006/02/19 00:04 | 트랙백 | 덧글(0)
2006년 02월 18일
겨울 화초 키우기 기본 상식 |  |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에는 초록색 식물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진다. 이럴 때 집안에 화초와 꽃을 키우면 인테리어 효과가 높아 삭막하기만 한 겨울 실내에 활력을 준다. 게다가 정서 순화 효과도 있어 아이들의 감성지수를 키우는 데도 좋고 실내 습도도 조절해주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화초를 키우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화초만 사다놓으면 죽어버린다’는 징크스를 가졌다든지, ‘내 화초만 늘 시들시들하다’든지. 하지만 화초 잘 키우는 마이더스의 손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화초에 대한 관리요령만 제대로 알고 지킨다면 얼마든지 싱그럽게 가꿀 수 있는 것이다. 겨울철 화초 관리의 관건은 뭐니뭐니해도 통풍과 수분이다. 얼어죽지 않게 베란다에서 실내로 들여놓았으니 |  | 
한 란. | 
벤자민 고무나무. | 그걸로 의무가 끝났다고 손을 털면 곤란하다. 실내에 들여놓은 지 두 달이 넘어가면 화초들은 건조한 실내 공기에 시달림을 당해 피곤해 한다. 실내에 들여놓았다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병충해는 물론 이상성장 증세를 보이기도 하므로 겨울철엔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화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충분한 수분과 신선한 공기의 공급이다. 해가 나는 낮 시간에 10~30분 정도 맑은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도록 환기를 해주도록 한다. 햇볕을 어떻게, 얼마만큼 쪼여줄 것인지는 화초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햇볕이 모자라면 잎과 줄기가 웃자라고 잎의 두께가 얇아진다. 반대로 햇볕을 지나치게 많이 받으면 잎이 두꺼워지고 색이 황록색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광선이 알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화초의 위치를 바꾸거나 차광을 해주는 것이 좋다. 물주기도 아주 중요한 요건. 실내에서 기르는 벤자민이나 팔손이 같은 나무는 실내 공기가 건조하면 잎이 누렇게 뜨게 되므로 겉흙이 말랐을 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듬뿍 준다. 하지만 물을 지나치게 자주 주면 뿌리가 썩으므로 주의하도록 한다. 난은 15~20일에 한 번, 선인장 종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된다. 겨울에는 찬물을 그냥 주지 말고 25도 정도되는 미지근한 물을 주어야 하며, 저녁에 물을 주면 밤 동안 토양의 온도를 낮추게 되므로 아침 10시경에 주는 것이 좋다. 화초는 겨울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성장을 하기 때문에 거름도 잘 챙겨 주는 것이 좋은데 많이 주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꽃을 피워야 하는 화초의 경우에는 비료를 주어 성장을 돕는 것이 좋다. 칼륨과 칼슘이 필요한데, 칼륨은 재와 퇴비에 많고, 칼슘은 달걀껍데기나 조개껍데기에 많이 들어있다. |
| 
 | 겨울철에 키우기 좋은 식물의 종류 |  | 1. 푸른 잎이 싱그러운 관엽식물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관엽식물은 잎과 꽃의 모양이 수려해 관상용으로 무척 사랑 받는 아이템이다. 실내에서 키워도 비교적 잘 자라는 관엽식물로는 야자나무, 소철, 고무나무, 아디안텀 등이 있다. 2. 자주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선인장 선인장은 잎 대신 가시를 내는 선인장과 식물. 물이 귀한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조직 내에 수분을 오래 보유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물 없이도 생명력을 오래 유지한다. 때문에 자주 물을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 편하다. 3. 단아하고 깔끔한 멋을 내는 난 난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단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매력으로 꼽는다. 향기가 은은하고 꽃이 소담스러운 것이 난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다른 화초에 비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4. 화려한 꽃을 즐기는 알뿌리 화초 알뿌리 화초는 꽃이 화려하고 빛깔이 예쁜 것이 특징이다. 한 번 심어두면 별다른 잔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 실내에서 키우기 쉽다. 프리지어, 아네모네, 히아신스, 수선화, 튤립, 백합 등이 알뿌리 화초에 속한다. |  | 

▶ 겨울철 실내를 싱그럽게 장식하는 데는 화초가 제격이다. 온도와 수분만 잘 조절하면 키우기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
| 
|
# by 여은아빠 | 2006/02/18 23:39 | 화초 키우기 | 트랙백 | 덧글(0)
2005년 08월 20일
http://blog.naver.com/sodri/20016042558 [주인백]
조지프 콘래드(조셉 콘라드)는, 카플란의 '무정부시대가 오는가'라는 책에서 만났다. 영미 소설 100선에도 들어가는 '노스트로모'를 읽고 싶었는데, 번역본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대학레포트 주제로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명작가인가보다(음 서점에 전기까지 나온 사람이니 대단한 사람이다).
[펌글] [오늘속으로<558>(8월3일)] 콘래드] 동프라이즈, 고종석씨 칼럼
조지프 콘래드, 작가
1924년 8월3일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가 67세로 작고했다. 콘래드는 여러 가지 점에서 특이한 작가다. 우선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본디 폴란드 영토였다가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 우크라이나의 베르디체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고 외숙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가 부모를 잃은 것은 아버지의 독립 운동 때문에 가족 전체가 유배되었던 북부 러시아에서였다. 고아 체험, 유형지 체험은 이후 콘래드의 생애와 작품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콘래드는 또 38세에 이르러 등단한 늦깎이 작가다. 17세 때인 1874년 마르세유에서 견습선원으로 처음 원양어선을 탄 이래 1895년 처녀작 ‘올메이어의 우행(愚行)’을 발표하기까지 20년간 프랑스와 영국의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 체험이 반영된 ‘나시서스호의 흑인’ ‘로드 짐’ 같은 작품 덕분에 콘래드는 해양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콘래드는 또 20대 이후에야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 영문학사에서 버젓한 자리를 차지한 아웃사이더 작가이기도 하다.
콘래드 문학을 떠받치는 정신은 도덕에 대한 집요하고 섬세한 탐구다. 말레이 군도를 배경으로 인간의 윤리 규범과 죄의식의 문제를 천착한 ‘로드 짐’이나 가상의 남아메리카 국가 코스타구아나를 배경으로 남성들의 낭만적ㆍ관념적 도덕의 허구성을 파헤친 ‘노스트로모’ 같은 장편들이 그 예다. 19세기 말 벨기에령 콩고를 배경으로 커츠라는 상아 수집가의 얘기를 그린 중편 ‘어둠의 오지’는 최근의 탈식민주의 문학이론가들도 즐겨 인용하는 텍스트다. 콘래드는 이 작품을 통해 식민주의의 참상을 비판한 진보적 작가라는 평과 더불어 흑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묘사한 극단적 인종주의자라는 평도 받았다.
# by 여은아빠 | 2005/08/20 12:27 | 흥미사항 정리 | 트랙백 | 덧글(0)
2004년 12월 01일
재미있는 글이다. 나도 필자와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민을 가더라도 우리나라를 잊지 못하나 보다... http://inkeehong.com/에서 펌
한국을 뜨고 싶나요?
작년 한 해 한국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40만명이 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1년에 약 7천건 이상의 원정출산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원정출산에는 유학이나 사업상의 단기거주 중에 낳은 아기 수도 포함되겠지?) 어쨋거나 엄청난 한국 아기들이 외국 국적을 자동취득하는 셈이다.
"그게 뭐 별건가?"라고 물으면 사실 별거 아니다. 자신의 아이를 이중국적 만드는 일은 (부자에게는 푼돈에 불과한) 몇만 달러 정도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일종의 보험드는 셈치고 속된 말로 돈지랄하는 거다.
그런데 그 보험이란 것이 제대로 먹혀들까? 그러려면 보험 수혜자가 똘똘해야 하는데 그것까지 보험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데 세상의 오묘한 조화가 작동한다. 이중국적까지 취득시켜 준, 돈지랄을 해가며 남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가기를 그토록 염원한 당신의 아이가 이중국적 신분을 이용, 악용, 선용하여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일까지는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다 이거다.
돈 많고 빽 있는데 왜 안되느냐고, 그런 애들이 수능시험도 잘보고 명문대 가고 좋은 직장가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이 튀어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돈 많고 빽 좋아서 과외받고 명문대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좋은 혼처에 인맥 학맥 지연까지 들먹거리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머물러 살 때 얘기이다. (또는 한국과 미국을 들락거리며 살 때 얘기이다.)
이중국적은 소지자의 국제적 신분까지 좌지우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삼성의 이씨 집안, 좃선일보의 방씨 집안, 망했지만 여전히 잘사는 동아그룹의 최씨 집안 등에는 이중국적도 많고 병역면제자도 많다. 그러나 그들이 왜 미국가서 자리잡고 승승장구하면서 살지 않는 것일까? 너무 유명한 가문을 들먹였나? 좀더 수준을 낮춰서... 옆집 아저씨네 시골 부모님이 땅을 팔았다. 20억을 손에 쥐었단다. 이참에 자식들에게 10억을 (세금 포탈하면서) 물려주었다. 때마침 옆집 아저씨네 며느리가 임신 3개월이란다. 그래서 LA에 원정출산갔다. 겨우 5만불이면 떡을 친단다. 무사히 득남하고 금의환향했다. 남은 돈으로는 부동산에 투자하여 집세 받아서 과외비용으로 유치원부터 교육시키겠단다.
정말 정말 가능성을 높게 잡아서 그 옆집 아저씨의 이중국적 손주가 머리도 좋고 품성도 훌륭한 청년으로 늠름하게 자라났다고 하자. 아무래도 한국에는 미래가 없으니까 미국에 눌러앉으라는 성화에 그가 정말 미국에서 직장을 잡아 눌러앉았다고 하자. 그는 행복할까?
물론 행복하겠지... 나름대로... 하지만 그가 그 실력으로 한국에서 성공해서 대접받으며 살 때보다 더욱 행복할까?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
한나라당의 수구꼴통세력들을 비롯한 바보들이 저 유치찬란한 작태를 벌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채 여전히 한국의 미래를 수구꼴통화하려는 야욕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걔들은 여기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아니면 정말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최병렬? 걔가 미국가서 뭐하겠는가? 동네 아저씨들과 골프장이나 들락거릴 일 말고 뭐가 있겠나? 이회창? 스탠포드 대학의 후버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단다. 국내정치판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적을 걸어놓는 가장 유명한 곳이 후버연구소와 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 그리고 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이다. 그곳에서 그가 대접받으며 국제적인 석학과 토론을 즐기며 연구생활을 할까? 아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회창은 미국에서는 별 볼일 없는 나라 한국의 질 수 없는 대선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정말 별 볼일 없는 노인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대선에서 지니까 돈과 인맥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가. 미국에서는? 애시당초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에 붙어서 피빨아먹고 천대 만대 편안하게 대접받고 살려면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 그러니까 쟤들이 그렇게 핏대 올리는거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여대면서 말이다.
요즘 젊은 한국 청년들은 어차피 한국에서 고생해봐야 생기는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고, 하물며 대접받을 일도 없다고 불만이 높다. 심지어 30대 40대 아저씨들까지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이 땅을 뜬다. 뜨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미국간다고 뭐 달라질까?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서도 뭐 빠지게 뺑이 치게 되어있다. 더 심하게 쳐야할지도 모른다. 딱 한 가지 맘에 드는 점이 있다면 한국에 있을 때처럼 한심한 이 꼬라지를 매일 아침 눈 앞에 달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점 정도? 하지만 그것도 뭐 선택해서 그리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미국사회의 주류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채 그저 적당히 돈벌고 밥먹고 골프치고 사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선 끼고 싶어도 끼워주질 않으니까 뭐 그냥 포기하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게 되는 셈이다.
영영 이 땅을 뜰 수가 없다구?
그러면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 벌어서 여행가는거야. 지구엔 아직도 갈 데가 많다. 몽고, 남미, 서남아시아, 동유럽... 한국이 뭣 같으면 가끔씩 그렇게 떠나서 더 뭣같은 나라를 둘러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카타르시스도 된다. 견문도 넓어진다. 기생관광 따위보다야 훨씬 건전하고 좋잖은가. 골프관광보다 돈도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멍청한 또라이들이 논다는 얘기 듣지 않고 놀아보겠다고 나서는 어학연수 따위보다 훨씬 유익하다.
미국의 한국 유학생들은 대만 유학생들처럼 졸업하면 십중팔구 한국으로 돌아간다. 본토 중국애들, 인도애들, 파키스탄 애들, 방글라데쉬 애들은 절대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왜냐구? 돌아갈 나라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고 살수 있을지를 따져보기 바란다. 당신이면 인도로 돌아가겠는가? 중국으로 돌아가겠는가? 하지만 대만과 한국은 다르다. 똑같은 5만불로 미국과 한국에서 사는 수준을 비교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당신은 그냥 5만불짜리이다. 언제 잘라도 그만인 5만불짜리 이민자일 뿐이다. 한국에서 당신은 동기동창 중에 검사도, 의사도, 경찰 고위 간부도 있을 것이다 (또는 생길 것이다), 부모님, 형제자매, 고모 이모 삼촌 사촌 한 다리 건너면 더 많은 빽도 있을 것이다. 적당히 명문대도 나왔다고? 그럼 좀 노력하면 뭐 한 자리 가능할지도 모르잖나. 미국에선 당신은 그냥 5만불 짜리다. 10년 뒤에도 그냥 5만불 짜리다. 미국에선 당신이 영어하면 애들이 (대부분) 정중하게 무시한다. 한국에서 영어 씨부렁거리면 (대부분) 존경의 눈빛으로 들어준다.
이중국적 못만들면 초중고생이라도 데려와서 여기서 공부시키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오죽하면 미국의 몇몇 인기있는 대도시 학군은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8학군 이상으로 유명하다. 엄마까지 따라와서 기러기 아빠 만들고... 되게 용감하다, 우리나라 아줌마들... 프랑스판 한국관광안내서에는 아줌마 항목이 따로 있다는 얘기를 이제는 믿을 수 있다.
이 아줌마들은 애를 그냥 미국학교에 보내면 다 성공하는줄 안다. 유학생 마누라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와서 애들 키우면서 다 미국 좋다고 침튀고 난리다. 그러다가 말이 조금씩 바뀐다 애가 네 살쯤 되면 Pre-K에 간다. 그 이후부터는 슬슬 미국이 싫어진다. 왜냐구? 학교에 쫓아다니면서 개망신 당해야 하니까. 지가 이대 약대, 서울대 가정대, 숙대 법대를 나왔으면 뭐하나? 영어 못하기는 남편이나 마누라나 오십보 백보인데... 애들 학교에 가서 몇 마디 하기야 한다. 미국 부모들도 처음엔 예의상 몇마디 들어준다. 그 다음부터는? 얄짤없이 왕따다, 왕따! 애들 때 당하는 왕따만 왕따인가? 어른 되어 당하는 왕따는 더 괴롭다! 대청소한다고 학교가면 영어로 쏼라쏼라 싸가지 없는 미국부모들은 담소만 나눈다. 한국 아줌마? 할 말 없으니까 열심히 노력봉사...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일도 잘하신다! 그렇게 1-2년 지나면 다들 한국가겠다고 한다. 남편 등을 박박 긁어서라도 가겠다고 한다. 시부모 싫어도 한국 가겠단다.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맘 누가 이해 못하겠는가?
미국 공립학교에 애 보내놓고 유학 보내서 성공할 거라고 좋아하는 또라이도 한국에는 많다 미국 사립학교에서 얼마나 애를 잡는지 알고나 있나 몰라... 부부 두 사람이 뼈가 빠지게 애 대학 등록금을 모으느라 일하는 실정을 아는지 몰라... 뭐 그것도 애가 그나마 잘해준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한국에서 애 교육 시키기 힘들다고 난리이다. 그래? 미국 공립학교에서 히스패닉, 흑인애들처럼 대충대충 키우는 것이 좋다면 언제든지 오는 것도 좋으리라. 미국에서는 뭐 사교육비가 안든다고? 웬만한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데가 미국 사립 중고교이다. 중학교 1년생 밤 9시까지 붙들고 과외시키는 데가 미국이다. SUV 한 대 더 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애들 실어나르며 낑낑대다가 스트레스성 아토피성 피부염이 도지거나, 그도 아니면 내사 모르겠다, 한국으로 다시 가자... 주변에서 정말 그런 사람 보았다.
게다가 대충 키우다가는 애들이 또 삐딱하게 나가기 쉽다. 말이 "삐딱하게"이지 그 정도가 무시무시하다. 자살하는 애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미국 고교에서는 애들이 인종별로 몰려다닌다. 얘들이 원래 초등학교 때는 그렇지 않다. 성조기 흔들며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도 하고... 난 미국인이라는게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면 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대충 눈치챈다. 나는 내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 저 자식은 웃기지 말라는 눈치네... 그 때부터는 퍼레이드에 나서는 자신의 모습이 원숭이같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제 슬슬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애들과 모이게 된다. 고등학교에 가면 완전히 뭉쳐 다닌다. 대학? 대학에서 황인종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 흑인애들이 우르르 떼거리로 걸어가는 모습 한 두 번 본게 아니다. 오늘 저녁 먹을 때 학교 식당 모습도 바로 그랬다.
웃기는 건, 그런 황인종 한국인 2, 3세 애들 대부분이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점이다. 한국어 거의 못한다. 웃긴다... 스스로도 미국애가 아니라고 느끼면서 한국어도 못하다니...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한국에 들어와도 적응을 하지 못한다. 처지가 비슷한 애들끼리 몰려다니게 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완전히 이방인이 되는 셈이다. 양 쪽 모두에서. 이들은 불행하게도 한국에도 미국에도 빽이 없다. 부모가 교수, 사장이면 뭐하는가? 이중국적으로 대충 한국 대학에 편입해 들어오면 뭐하는가? 맨날 사고치고 다닌다. 자기정체성(identity)가 없는 애들처럼 불쌍한 애들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선 맨날 자기정체성 얘기를 한다. 민족, 언어, 국가, 사회공동체도 거기에 들어간다. 그거 없으면 축구공에 불과하다. 맨날 얻어차이지. 누가 거둬주는 사람도 없다. 정말 불쌍하다. 그게 애들 탓일까? 다 부모 탓이지.
유식한 부모를 둔 이민 2세 들은 한국어를 잘 못한다. 애들 빨리 적응시키려고 영어를 쓰기 때문이다. 그것도 콩글리쉬를... 무식한 노동자 출신 부모를 둔 이민 2세들은 이중언어구사자가 된다. 부모가 영어를 못하니까 할 수 없이 한국어를 쓰기 때문이다. 그나마 듣기만 하는 한국어에 그칠 공산이 높지만...
피눈물나게 뒷바라지해서 하버드대 졸업시키고 어쩌구 떠들어 댄다. 서른도 안된 청년이 7막 7장이라는 자서전도 썼다. 그런 사람이 그러면 왜 한국에 와서 살까? 왜 한국에서 코넥션 만들려고 소위 명문가 딸과 결혼을 할까? 아예 야심에 걸맞게 케네디가 처자와 결혼하지. 다 이유가 있다. 미국에선 안통하기 때문이다. 그걸 무리하게 시도하다간 glass ceiling에 목이 꺾일 때가 언제고 오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인은 한국에서 살아야 대접받고 살 수 있다. 물론 생각만큼, 욕심만큼 대접 못받고 살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적더라도 한국에서 살면 대접받을 가능성이 남아있다. 외국에선? 없다, 전혀 없다. 그곳에서 쏟아붓는 노력의 10분의 1만 이 땅에서 붓는다면 벌써 그들은 사회저명인사로 존경받으며 살 수 있다.
알량한 결론...
한국이 싫어서 뜨고 싶은 사람들은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말 너무너무 싫어서 뜨는 것 이상의 대안이 없는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누리고자 하는 무엇이 이 나라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그냥 눌러앉아 살기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눌러앉아 살아야 할 나라니까 미우나 고우나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기 바란다.
여기서 인용 한 대목...
The personal, as everyone's so fucking fond of saying, is political. So if some idiot politician, some power player, tries to execute policies that harm you or those you care about, TAKE IT PERSONALLY. Get angry. The Machinery of Justice will not serve you here--it is slow and cold, and it is theirs, hardware and soft-. Only the little people suffer at the hands of Justice; the creatures of power slide out from under with a wink and a grin. If you want justice, you will have to claw it from them. Make it PERSONAL. Do as much damage as you can. GET YOUR MESSAGE ACROSS. That way you stand a far better chance of being taken seriously next time. Of being considered dangerous. And make no mistake about this: being taken seriously, being considered dangerous marks the difference, the ONLY difference in their eyes, between players and little people. Players they will make deals with. Little people they liquidate. And time and again they cream your liquidation, your displacement, your torture and brutal execution with the ultimate insult that it's just business, it's politics, it's the way of the world, it's a tough life and that IT'S NOTHING PERSONAL. Well, fuck them. Make it personal.
from _Altered Carbon_ by Richard Morgan
Posted by ihong at 2003년 11월 05일 11:11
# by 여은아빠 | 2004/12/01 23:19 | 흥미사항 정리 | 트랙백 | 덧글(0)
2004년 11월 28일
2003년 대만의 국민소득은 대만 12720$ 입니다. 한국의 국민소득 12626$와 거의 비슷하죠. 그러나 인구는 한국이 대만보다 2배나 높기 때문에 경제규모는 한국이 대만보다 2배이상 큽니다. 2003년 한국의 GDP는 6,058억$로 세계 11위 수준이지만, 대만의 GDP는 약 2,800억$ 정도밖에 안되죠. 세계에서 대만의 경제규모는 약 17위~18위 정도라고 하네요.
한국과 대만은 경제발전 정도가 비슷하고 기술력도 비슷해서 세계의 선진국들은 한국과 대만을 같은 레벨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증권회사 FTSE가 2006년 한국과 대만 증권시장을 동시에 선진국시장으로 승격시킨다고 할 만큼 세계에서 한국과 대만은 엇비슷하게 평가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산업구조는 굉장히 판이하게 다릅니다. 한국은 대기업위주로 산업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중화학공업이 상당히 강하고 완성품위주의 수출을 위시해왔던 반면, 대만의 경우에는 중소기업 위주로 산업이 발달되어 경공업이 강하죠. 대만에는 조선공업,철강공업,자동차공업,석유화학 등 한국이 세계적인 위치에오른 중화학 공업은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 대만은 한국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되고있는 부품산업이 정말로 강하죠.
이렇듯 판이하게 다른 한국과 대만의 전략산업의 차이처럼 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도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은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포항제철 등 주로 완성품 위주의 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반면, 대만은 Acer,TSMC,UMC,VIA처럼 완제품 보다는 부품업체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있죠 실제로 파운드리 반도체나 PC, 노트북 시장에서 대만업체들의 시장지배력은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세계 PC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HP나 Dell 컴백 등 미국기업들의 PC는 대부분이 대만에서 OEM형식으로 공급하고 있는 것들이죠.
대만의 노트북 생산량은 세계생산량의 50%를 넘고있고, 파운드리 반도체 역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도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브랜드파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기업들도 90년대까지 싸구려 취급을 받았지만 90년대말부터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더니, 최근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선진국시장을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는 브랜드가 많아지고 있지만, 대만은 단 1개도 없습니다. -_-;;
이렇듯 한국과 대만은 경쟁하는 분야가 지금까지는 많이 달랐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국과 대만의 경쟁관계가 한국과 일본처럼 높아지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치열한 부분이 LCD입니다. LCD는 삼성과 LG가 세계시장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을만큼 한국의 아성이 강력합니다만, 이에 도전하는 대만의 아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만에는 5개업체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LCD를 집중적으로 육성시키고 있기 때문에 국가별 시장점유율에서는 업체수가 많은 대만이 한국을 조금 앞서고 있죠.
re: 대만의 경제규모 와.. xnaox (2004-09-19 13:40 작성) | | 이의제기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국과의 비교를 간간히 하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대만이 잘나가던 시기는 대략 80년대 초반이라고 보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대만을 선진국쯤으로 생각하시만,많은 편견이죠. 각종 언론에서 대만과 한국을 비교하지만,실제적으로 아시는 분이라면 대만은 한국보다 아래급에 속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80년대 초반이후 그나마 버틴것이 외환보유가 가장 컷지만 이것도 지금 한계에 와서 한국의 기업벤치마킹에 들어갔죠. 사회기간산업에 투자한 시기는 대략 10년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일본 식민시절의 시설을 그대로 썻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이한 사항은 1988년까지 계엄체제를 유지한 나라입니다. 장개석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한국의 박정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만은 한국과 다르게 글로벌수준의 기업이 없습니다. 이는 대만이 과거 정부정책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위주로 산업을 증강했다면 대만의 경우는 중소기업위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쉽게 얘기해서 대만정부가 적극적인 개입없이 기업스스로 크게 놔두죠. 그래서 한국은 대기업 하나가 망하면 나라가 시끄러운 것과 달리 대만은 하나의 기업이 망하면 그 기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이는 더이상의 발전은 없는 안전빵구조죠.
참고로 미하버드대의 채너리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인구 2,000만명미만의 국가는 소국의 길을 그 이상은 대국의 길을 걷는다... 대만이 중소기업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죠.
# by 여은아빠 | 2004/11/28 10:04 | 트랙백 | 덧글(0)
2004년 11월 27일
[해외논단]중국의 외국인투자 통계 허실 지난달 25일 워싱턴 포스트 일요판 1면에 ‘테러와 똑같이 무서운 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클린턴 행정부의 무역정책 관리였던 데이비드 로스코프가 썼다. 도대체 무엇이 테러만큼 무섭다는 말인가. 로스코프는 다음과 같이 포문을 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서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첫째 목적로 떠올랐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로스코프는 이 같은 현상이 여러 가지 ‘실제적인 경제적 위협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며, ‘가장 치밀한 테러리스트가 고안해 낼 수 있는 어떤 위협보다 더 큰 영향을 미국인들에게 미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스코프의 이 글은 기자적 재치가 넘치기는 하나 경제적학 측면의 이해 부족을 노출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의 외국인투자 통계는 아주 신빙성이 떨어진다. 격월간 OECD옵서버 7월 3일자는 “중국의 FDI 실적치 누계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해외 화교 및 대만 투자분과 본토 이외의 투자자들에게 부여되는 세금 혜택을 이용하기 위한 중국 내부의 ‘우회투자분’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 모두가 홍콩 투자분으로 처리된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외국인’투자액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실제로는 중국인 투자로서 조세 혜택을 받기 위해 홍콩을 중개지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회투자 문제는그만두고라도 중국의 실제 FDI 가운데 절반을 훨씬 넘는 액수는 홍콩과 대만 투자분이며, 그 중 상당액은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적 시설을 중국으로 재배치하기 위한 것이다. 나머지 투자액은 주로 일본과 한국에서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02년도 보고서에서 중국의 FDI 가운데 미국 투자분은 1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투자분은 단 11%에 그쳤다.
지난해 1월 15일 ‘비즈아시아’가 보도했듯이, 중국정부는 98년 이후 국영 공장에서 해고된 2700만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닛산자동차와 삼성전자 같은 외국 기업들의 사업 확장을 한층 쉽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95년∼2002년 중국의 산업고용은 1억900만명에서 8310만명으로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미국의 중국 투자 가운데 많은 부분은 패스트푸드 체인, 관광시설 및 캐딜락 대리점과 같이 현지 시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조업 투자는 주로 현지 시장을 표적으로 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사실들에서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로스코프는 “비록 FDI가 자본 흐름의 한 유형에 불과하지만, 중국 FDI와 같은 극적인 동향은 21세기에 미국이 세계 전체의 FDI에서 제몫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한층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FDI 감소는 평소의 주요 투자국이었던 캐나다와 유럽의 경제적 부진의 징후일 수 있다. 그 나라들은 국내외 어느 곳에서도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다. 이러한 FDI 동향은 ‘국제투자자들’의 주식·채권 선호도와는 별로 연관성이 없다.
베어스턴스증권의 6월 15일자 보고서는 “지난 4월까지 1년간 외국인들의 장기 미 증권 순보유액은 8400억달러나 늘어 미국의 경상적자(5400억달러)를 아주 쉽게 보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증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뉴욕거래소와 나스닥 시가총액의 10%에 이른다. 로스코프는 또 제조업 일자리 유출과 예산적자 같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미국의 의료사회화 결여가 노동비를 증가시켜 일자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유럽과 캐나다의 의료사회화는 사용자와 피용자들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성인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워싱턴 타임스
앨런 레이놀즈(美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권화섭 객원편집위원
Election year hysteria
By Alan Reynolds
"Just as scary as terror" screamed a front-page Sunday Outlook headline in The Washington Post, July 25. It was written by David Rothkopf, a former trade policy official in the Clinton administration.
What could be just as scary as terror? The opening salvo in the Rothkopf article was: "The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released figures showing that last year for the first time, China supplanted the United States as the No. 1 destination for 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Oh my goodness. How terrifying. This China scare was most prominent among assorted "real economic threats," which he argues, would "touch more Americans than anything even the most sophisticated terrorist could devise."
Mr. Rothkopf's biography boasts some graduate courses in journalism, but this story is long on journalistic flare and short on economic substance.
For one thing, figures on foreign investment in China are notoriously flaky. The OECD Observer, July 3, 2003, explained: "Nearly half of cumulative realized FDI in China is listed as having originated in Hong Kong, China, though this includes an uncounted amount of FDI from the overseas Chinese diaspora, Chinese Taipei, and from within China itself, via 'round-tripping' in Hong Kong to take advantage of fiscal incentives offered to nonmainland investors." Much of "foreign" investment in China is actually Chinese investment channeled through Hong Kong to make it appear foreign and therefore qualified for a tax break.
Putting round-tripping aside, well more than half of actual direct investment in China has come from Hong Kong and Taiwan, as they relocated many low-value, labor-intensive facilities to China. The rest came mainly from places like Japan and South Korea. A 2002 International Monetary Fund study in showed the United States accounted for less than 10 percent of FDI coming into China; Europe for only 11 percent.
As Biz Asia reported on Jan. 15, 2003, "The Chinese government made it easier for companies such as Nissan Motor Corp and Samsung Electronics to expand their businesses to provide employment for the 27 million workers fired from state-run factories since 1998." Unfortunately, China's 1995-2002 industrial employment nonetheless dropped from 109.9 million to 83.1 million, says the Asian Development Bank.
Many of the relatively modest U.S. investments in China are designed to sell services to the local market — such as fast-food chains, tourist facilities and Cadillac dealerships.
U.S. manufacturing investments are likewise largely targeted toward local markets. A survey of member firms in the Manufacturers Alliance/MAPI indicated "the most significant factor in driving the decision of manufacturers to have an ownership or equity position in China is the desire for access to Chinese and/or Asian markets." General Motors, for example, recently reported a sizable share of its second-quarter profit surge came from selling cars in China. Buicks are assembled in China from U.S. parts, although the Economist observes production costs 5 percent more in China than in U.S. plants.
So where is the terror in all this? Mr. Rothkopf claims, although "foreign direct investment is just one type of capital flow, this dramatic swing can be seen a further evidence that in the 21st century America is going to have to fight hard for its piece of the investment pie." Although he admits "the numbers fluctuate," he somehow concludes one year's estimates of direct foreign investment demonstrate "disaffection of important classes of international investors."
Actually, the 2003 dip in U.S. direct foreign investment was likely a symptom of poor economic performance among the usual sources, Canada and Europe. They weren't investing much anywhere, at home or abroad. Such fluctuations in foreign firms' direct investments say almost nothing about preferences of "international investors," mainly stocks and bonds.
A June 15 report from Bear Stearns pointed out that "in the 12 months to April, foreigners increased their net holdings of long-term U.S. securities by $840 billion, understating the ease with which the U.S. has been financing its current account deficit" (which was smaller, $540 billion). Foreign investments in the U.S. stock market now account for 10 percent of the value of New York Stock Exchange and Nasdaq, the report notes, up from about 6 percent a decade ago. At the end of last year, 86 percent of all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was private, with the balance consisting of foreign central banks holding dollar-denominated assets as reserves.
Mr. Rothkopf quickly tosses in the usual litany of complaints about "hemorrhaging of manufacturing jobs" (trivial compared to China), budget deficits (trivial compared to India), etc.
He also claims the absence of socialized medicine in the United States raises the total labor cost here (rather than the mix of cash and benefits) and thus "becomes a jobs issue."
But socialized medicine in Europe and Canada results in demoralizing taxes on employers and employees, and therefore a much smaller fraction of adults with jobs than in the U.S. In the Minneapolis Fed's Quarterly Review for July, Edward Prescott demonstrates beyond reasonable doubt "low labor supplies in Germany, France and Italy are due to high tax rates."
Mr. Rothkopf's key policy proposal is little more than a slogan, nearly as vague as his threats — namely, a National Economic Strategy: "Every couple of years, Singapore government officials proactively seek the advice of private business leaders and other experts and come up with a National Economic Strategy that reorients public policy — tax laws, workers training, industry regulation to strengthen competitive industries and shore up weak aspects of the economy."
He is partly right. Asian tigers are rarely foolish enough to shore up weak companies, but they know about tax laws.
The highest marginal tax rate in Singapore was cut from 55 percent in 1979 to 33 percent in 1990 and to 26 percent today. The corporate tax is even lower, 24.5 percent. The sales tax is 3 percent. Singapore's tax strategy has been called supply-side economics. But if relabeling it a "National Economic Strategy" could give the U.S. such a tax system, I'm all for it.
Alan Reynolds is a senior fellow with the Cato Institute and is a nationally syndicated columnist.
2004.08.04 (수) 18:20
# by 여은아빠 | 2004/11/27 22:40 | 트랙백 | 덧글(2)
2004년 11월 27일
대만의 역사
대만은 중국의 영토였던 적이 없다? [도올의 문화일보 2003-09-01 11:34:18 글에서] 대만은 중국역사에서 ‘도이’(島夷), ‘대원’(岱員), ‘영주’(瀛洲), ‘동제’(東魚是), ‘유구’(流求) 등의 이름으로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 단어가 오늘의 대만을 가리키는지는 전혀 확실치 않다. 송·원시기까지도 대만은 중국역사에 등장치 않는다.대만이라는 섬은 본래 남도어계(南島語係, Austronesian languages)의 폴리네시안 원주민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는데 중국대륙 복건성(福建省)에서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명나라때부터였다. 그러나 1498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인도서남부의 캘리컷(Calicut)에 도착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직항로를 개설한 이후부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이 아름다운 섬에무역의 근거지를 마련하기 시작한다. 포르모사(Formosa)는 대만해협을 지나가던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1624년 스페인을 몰아내고 네덜란드인들이 이 섬을 장악하면서 1662년까지 네덜란드영토가 된다. 이 시기는 뉴욕(New York)이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었던 시기였으며 네덜란드의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른시기였다. 바로 1653년 8월 16일 제주도 삼방산 앞에 표류한 하멜의 스페르베르(Sperwer)호도 네덜란드 대만총독부에서 에도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배였다.
명나라가 무너지고 만청(滿淸)정권이 들어서면서 당왕(唐王)을받들어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를 내세웠던 정성공(鄭成功)이 타격을 입고 새 군사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네덜란드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3대에 걸쳐 정씨왕국(1661∼1683)을 세운다. 그리고 이어 청(淸)에게 타도되어 청나라 복건성관할의 대만부가 된다. 그리고 바로 우리나라 동학혁명을 계기로발발한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대가로 마관조약(馬關條約)에 의하여 대만섬과 팽호열도를 일본에 할양함으로써 대만은 51년간 일제식민통치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게 되면서 대만은 다시 국민당의 통치에 귀속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현재 인구의 85%를 점령하는 대만인들은기본적으로 대만의 역사를 통하여 식민통치만을 경험했지 한 번도 자주적인 국가의 체제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네덜란드, 정성공, 청조, 일본, 국민당의 400년 역사가 모두 외래의 지배세력일 뿐이다. 이것은 곧 국민당의 지배가 과거의 식민정권에 비해 더 열악하면 열악했지 그들에게 자주적인 국민국가의식을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무조건 투항을 한 1945년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고 있었으므로 통일된국체(國體)가 없었다. 그러니까 대만을 접수한 것은 ‘나라’가아니라 ‘당’이었다. 그리고 이 당의 접수방식은 부패한 패잔병의 도둑질, 강탈과도 같은 것이었다.
1947년 2월 27일 저녁, 밀수담배를 적발하던 전매국단속원이 담배를 판매하던 할머니를 총개머리로 으깨버린 광경을 목격했던 군중의 시위로 시작된 소위‘2·28사건’(二二八事件)으로 최소한 2만 명 이상의 대만사람이 무자비하게 살상된 역사의 참극은 우리나라의 ‘5·18광주사태’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섬 포르모사의 산하 전체가 피로 붉게 물든 그 비극의 규모는 도저히 같은 차원에서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광주사태의 역사적 인과의 에너지는 불행하게도 이미 DJ정권이 다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어떠한응집력도 갖지 못하는 과거의 이벤트로 변질되어버렸다. 그러나2·28사건은 오늘까지 면면하게 살아있는 대만사람들의 통한(痛恨)이다. 이로써 1949년의 1월 5일 대만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 계엄의 질식은 1987년 7월 15일까지 지속되었다. 우리나라일제식민 36년보다 더 긴 세월을 대만인들은 국민당정부의 계엄치하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다.
[대만에서 국민당은 무엇인가] 내가 대만에 유학한 것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인데 당시 대만대학의 학구적 분위기는 대륙에서 국민당과 함께피난 온 전국각지의 대석학들의 풍도있는 강의로 활력과 운치가넘쳐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륙문화의 연장이었고대부분의 학생들의 관심은 어떻게 대만을 탈출하여 멋있게 외국유학을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외관상 사회적 관심은 전무했고 ‘반공’이라는 이념 아래 ‘물망재거’(勿忘在굓:거나라에 피신 가있다가 제나라 본토를 회복한 제환공의 고사)라는 구호를 매우 순종적으로 암송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4·19 학생의거를 경험했고, 반공이념과 매판자본을 결탁시킨 군사정권과 그배후에 있는 미제국주의의 타도까지 외쳐댔던 청년 도올의 감각은 무기력한 대만대학의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시대만이 계엄하에 있었다는 것도 나는 실감나게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 친하게 모여든 학생들은 대부분이 대륙본토인(外省人)들이었고 반공이념을 혐오하는 반국민당 좌파학생들이었다. 나는 이들이 겪고 있는 깊은 좌절의 심연 속에서 강한유대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강렬한 사회의식이 어떠한 미래를 개척해갈지, 그것은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대만대학철학과 대학원생으로 있는 그 기간동안에 바로 법과대학 학부생으로 천쉐이삐엔(陳水扁)이라는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가 어떠한 이념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때만 해도 대만독립을 주장하던 사람들과 순수한 좌경의 젊은이들은 반국민당노선이라는 측면에서 이념적으로결코 대립되어 있질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요번에 대만엘 가보고 놀란 사실은 바로 반공을 외치던 국민당이 어떤 의미에서 친중공세력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반공세력이 용공세력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반공의 대본산이었던 ‘연합보’(聯合報), ‘중국시보’(中國時報)와 같은과거의 양대언론이 지금은 중국 ‘인민일보’의 대변지 노릇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좌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가? 물론 극단적인 좌파들은 소위 ‘좌통’(左統)이라고 부르는, 공산정권에 의한 통일을 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극소수이며 대다수 대만인민들의 바램을 전혀 반영치 못한다.나머지 좌파들도 뚜렷한 자기의 입지를 찾기 어려운 입장일 것이다. 결국 반체제의 비판적 래디칼리즘이 또 하나의 거대한 체제와 결탁해야하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인간세에서 얼마나 엉터리 짓거리인가 하는 것은 대만의 이념적 혼란상에서 가증스럽게 드러난다. 2000년3월 18일 천쉐이삐엔의 당선은 이러한 이념의 혼돈 속에서 400년간의 식민생활을 종식시키고 대만사람들의 자주적 국가에 대한열망을 구체화시킨 최초의 사건이며 그것은 1986년 9월 28일 계엄하 비밀결사로 창당된 민진당(民主進步黨)이 불과 14년만에 집권여당으로 부상케 되는 지각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쉐이삐엔은 우리나라 ‘말’지와 비슷한 성격의 잡지였던 ‘미려도’(美麗島)라는 잡지의 관계자들이 1979년 12월 10일 고웅(高雄)에서세계인권의 날 기념행사를 강행하여 많은 부상자를 내고 반란죄로 기소된 ‘고웅사건’(高雄事件)을 담당한 인권변호사로서 역사에 부상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주동자가 그의 선배요 선생이었다.
# by 여은아빠 | 2004/11/27 22:25 | 트랙백(5) | 덧글(0)
|